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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소리의 대가'

용인의 문화예술인 13. 최근순 명인명창

 

 

 

 

하늘거리는 화사함… 소박함과 투박한 맛

 

[용인신문] 타고난 음색과 카리스마로 무대를 장악하는 용인향토민속 제2호 예능보유자 최근순 명인명창. 용인향토민속2호인 경기향토소리는 용인지역에 전승되고 있는 창부타령, 풍년가, 사설난봉가 등 민요 30종을 비롯해 용인 백암 상여소리 등 경기토속민요와 산이제소리, 경기12잡가 등이 해당한다. 전통음악을 지키면서 철저한 고증을 통해 올곧게 후대로 전승시키는데 앞장서고 있는 그녀를 경기도국악당 민요연습실에서 만났다. 현재 그녀는 24년간 몸담고 있는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전 경기도립국악단) 악장으로서 후배 연주자들과 함께 끊임없는 연습을 통해 최고의 공연을 펼쳐 보이고 있다. 경기향토소리보존회장 이기도 한 그녀는 전수자와 문하생을 대상으로 경기민요의 발성법을 비롯해 시금새 소리 만드는 법을 제대로 전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57호 경기소리 보유자였던 고 묵계월 선생의 제자로 올해 64세인 그녀는 평생을 노래와 춤으로 살아왔다. 지금까지 국내외 공연이 3000여회에 이를 정도다.

 

처인구 백암면 장평리 561번지가 고향인 그녀의 할머니는 강신무였고, 아버지는 남사당패와 관련돼 있었다. 세속적으로 전통음악을 접하면서 내려온 예인의 집안이었기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음악 속에 묻혀 살았다.

 

특히 그녀는 할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녀가 지금 유일하게 산이제소리를 할 수 있는 것은 순전히 할머니의 영향이다. 그녀는 훗날 경기도당굿 보유자 고 오수복 선생으로부터 제석거리를 전수받는 등 용인을 중심으로 경기향토소리를 익혔다.

 

어린시절에는 고모로부터 춤까지 배웠다. 고모는 경기살풀이춤 보유자인 중요무형문화재 97호 고 김숙자 명인으로부터 춤을 사사했다.

 

예술인 집안서 태어나
자연스레 소리 익혀
묵계월 제자답게 노력파
경기민요 발성법 개발

 

그녀는 어린시절 동요로부터 시작해 중고교시절에는 독창에 소질을 보였다. 난파음악제 출전하는 당일 날 장마로 인해 출전을 하지는 못했지만 그녀의 끼는 주체할 수 없었다. 한때 트롯트 가요도 접했고, 판소리, 서도소리도 해봤다.

 

모든 음악을 섭렵했으나 민요에는 미치지 못했다.

 

“내 목에는 민요가 더 맞았어요. 민요가 좋더라구요. 어찌보면 가요가 개인의 인기나 경제적인 면에서 더 좋을 수 있었지만 민요는 뿌리를 지키는 근간이었고, 자존심 문제였기 때문에 민요를 택했던 것 같아요.”

 

그녀는 일제강점기 때 전통문화 말살정책에 의해 마당문화였던 우리 음악이 방구석문화로 전락한 것에 분노했다.

 

“밖에서 소리 하던 사람을 방구석으로 끌어들여 기생문화로 전락시켰잖아요. 험악하게 다뤘고 밑바닥 문화로 천대시했죠. 우리 음악에 대한 자긍심을 가진 사람이어야만 우리 것을 올곧게 전수할 수 있겠다 이런 마음으로 국악을 했어요.”

 

그녀는 묵계월 문하에서 이수자로 있으면서 고 박동진, 고 안비취, 최창남 선생 등 내로라하는 명인명창들과 공연도 많이 다니면서 정통의 정취를 몸에 익혔다.

 

96년도에 경기도립국악단이 생기자 40세 나이로 입단했다. 늦은 나이였지만 경기민요를 활성화 시키고 보급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다. 97년 제4회 경기국악제에서 경기12잡가 중 유산가, 선유가로 대통령상을 수상하면서 그녀의 명성이 높아졌다.

 

98년에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대통령상 수상기념으로 최근순의 봄을 여는 소리 첫 콘서트를 가졌을 때 2000석의 대공연장 좌석이 꽉 찼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후 한국방송대상, KBS 국악대상 등 수상이 이어지면서 그녀의 실력은 자타가 인정하는 경지에 도달했다.

 

그러나 그녀는 안주를 용납하지 않았다. 목소리를 다듬고 더 다듬는 노력을 쉬지 않았다.

 

“하루에 8시간을 연습하면 목에서 피 냄새가 나요. 성대결절은 찢어지기도 하지만 굳은살이 박이기도 하는데 굳은살이 박이게 되면 계속해도 목이 쉬지 않게 되요. 하다보면 그런 상황이 오게 되는 거에요. 그건 대단한 공력이고 인내심이고 지구력이 없으면 안되요.”

 

그녀에게도 목이 쉬어서 목소리가 안나와 좌절할 때도 있었다. 병원을 수백번 다니기도 했다. 명인 명창 경지는 쉽게 오르는 게 아니었다. 최근순 명인명창처럼 목소리를 타고난 사람조차도 피나는 연습과 노력을 거듭해야 도달하는 경지다.

 

그녀는 경기민요 전수관의 필요성을 설파한다. 점점 사라져가는 전통음악에 대중적 보급이 시급하다는 생각이다.

 

“향토민속 예능보유자로 지정을 했으니 제대로 활동해서 제대로 전승할 수 있도록 전수관을 마련해 줬으면 해요. 어린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연령대에 맞는 국악 뮤지컬 등 대단한 볼거리를 제공해서 우리것을 사랑할 수 있게 만드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죠.”

 

경기소리박물관을 만들어 경기 소리 창법을 비롯해 음반, 책 등 명인 명창들의 물건 전시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경기소리의 맥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또 용인국악예술단, 민요창극단 등이 생겨나 경기민요의 소리와 흥이 시민과 도민에게 사랑받는 콘텐츠로 자리 잡기를 희망하고 있다.

 

“묵계월 선생한테는 특이한 발성이 있어요. 꾸밈음, 시금새라고 하는데 내가 30대 때 꿈속에서 묵계월 선생이 노랫가락을 가르쳐주는 거에요. 눈을 번쩍 뜨니 새벽 3시였는데 그 소리를 잊어버릴까봐 그 새벽에 연습을 했어요. 다른 사람들 시끄러울까봐 목욕탕에 들어가 물을 받아놓고 거기에 대고 연습을 했어요. 남편이 소리에 미쳤다고 그랬어요.”

 

그 후로 목소리가 쉽게 됐다. 그러나 그녀는 “아직도 배워야 하는 게 남아 있다”면서 “쉽게 되는 게 없다”고 말한다.

 

 

최근순 명창에게도 그녀만의 발성법이 있다. 입안에서 소리 내는 방법인데 배에 힘을 주고 입안에서 공명을 줘 입 밖으로 내보내는 소리다. 40대 때부터 개발한 자신만의 소리다. 시원한 게 오래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부드럽고 포근할 때도 있고 낭창낭창 하면서 칼 같이 할퀼 때도 있는 최근순만의 목소리다.“민요 소리가 다 똑같아요. 개성이 없고 목에 힘을 줘서 답답한 소리죠. 이런 소리는 오래 들으면 질리게 되기 때문에 발성법을 개발했습니다. 저는 성악의 발성법을 배웠기 때문에 응용해서 저만의 소리를 내게 된 것입니다.”

 

마치 벚꽃이 바람에 떨어질 때 하늘거리는 화사함과 멋스럽고 구수한 중후한 맛, 소박함과 투박한 맛, 이모든 소리를 자유자재로 발성하는 최근순. 그녀는 노래가 좋고 소리가 좋을 뿐이다.

 

“나는 노래가 좋아요. 소리가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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