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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지역 구석구석 누비며 ‘향토사 발굴’ 열정

용인의 문화예술인 20. 이종구 전 용인학연구소장

 

용인 인물·문화재·민요 등 지역사 탐구
책에 나오는 모든 현장 직접 방문 산교육
80년대 용인문화원 회원 가입 본격활동
향토 씨족사회 조사 새로운 도전 신바람

 

[용인신문] 이종구(71) 전 용인학연구소장은 용인의 도요지 조사를 비롯해 용인의 근현대 인물연구, 용인의 성씨 연구, 고문헌 발굴 등 다방면에 걸쳐 연구 실적을 남기면서 용인향토사를 풍요롭게 하고 있다. 어느덧 칠순을 넘겼지만 용인 향토사에 대한 끝없는 사랑만큼은 청년의 열정에 뒤지지 않는다. 용인 곳곳을 누비는 그에게서 행복감이 느껴진다.

 

이 전 소장은 중고교에서 교사로 재직 중이던 198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향토사에 뛰어들었다. 용인상고, 수지중학교, 성지중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이 전 소장은 교과 관련 문화재나 역사 인물을 교육할 때 학생들이 자부심을 갖고 자신의 지역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향토사를 접목시켰다.

 

“보통 학교에서 속 썩이는 학생들이 있어요. 그 학생들은 학교에서 칭찬받을 일이 없어요. 나는 주로 그런 학생들한테 관심을 갖고서 이모 학생에게는 너는 조선 최고의 천재적 두뇌를 가진 이석형의 후손이다. 멋지지 하면서 반 학생들에게 박수를 쳐주게 했어요. 혹은 능원리에 사는 학생에게 너는 정몽주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다. 얼마나 멋지냐는 식으로 자긍심을 갖게 해줬어요. 그러면 학생들이 아주 좋아하면서 자기 지역 향토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요. 그런 게 무척 보람이 있었어요.”

 

수지중학교 학생들한테는 이종무 장군에게 편지쓰기를 시켰다. 이종무 장군의 묘가 수지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학생들에게 숙제를 내줌으로써 내고장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만들었다.

 

이 전 소장 자신도 기존에 용인문화원에서 나온 용인의 인물, 유물유적, 민요 등 지역사에 대한 책을 통해 공부를 철저하게 했다. 책에 나오는 모든 현장을 찾아다녔다. 그러면서 80년대 후반에 용인문화원 회원으로 가입하면서 자연스럽게 문화원 일에 참여하게 됐고 향토사 연구의 길을 걷게 됐다. 90년대에 용인군지 편찬을 할 때 이 전 소장에게 고문서 발굴과 용인의 천주교, 통일교 등 종교에 대한 부분이 맡겨졌다.

 

이때 이 전 소장이 발굴한 고문서가 조성래가 일기였다. 조성래 집안에 전해지는 4~5대에 걸친 일기로 1870~1990년대 문서였다. 용인향토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였으나 아쉽게도 현재는 전해지지 않는다.

 

“그 일기책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집을 찾아가서 어르신한테 빌려 왔어요. 근데 어르신이 난 그게 나가면 잠을 못잖다고 해요. 그런데 그 분 아들이 내 동창이었어요. 어르신이 하시는 말씀이 우리 태희하고 친구니 빌려주마. 그래서 빌려와서 당시 군지 편찬 책임자였던 강진갑 선생에게 정리하라고 전해줬어요. 번역을 해야 하는데 하지는 못하고 간단히 일기의 내용과 성격만 소개 한 후 보름 만에 갖다드렸는데 그 어르신이 돌아가시고서 없어졌어요. 아들도 찾으려고 했는데 결국 못 찾았어요. 내용 중 중공군이 소를 빌려갔는데 그냥 가져가는 줄 알았더니 삼일만에 돈 얼마를 갖다 주더라. 그런 내용이 나와요. 그런데 그런 일기가 없어진 거에요. 그래서 속상해요. 카피도 못했어요.”

 

그 후 점점 더 향토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 전 소장이 가장 보람을 느꼈던 것은 관란재일기를 발굴해 한국사료총서 44집으로 만든 일이다.

 

“원삼면 문촌리에 관란재 정관해 선생의 아들 정영대라는 분이 소장하고 있어서 그분을 찾아갔어요. 그분은 그 일기를 굉장히 귀하게 여겨서 24 권인데 봄이면 꼭 그 책을 말려서 잘 보관해 둬요. 그분에게 한문을 모르니까 번역 좀 해주세요라고 했더니 어허 이사람, 자네 집이 어딘가. 그래서 신갈 지곡리라고 했더니 거기 질(지일)아냐. 네 질이죠. 자네 갑규 아냐. 알죠. 당숙이세요. 어허, 갑규 어머니가 우리 고모야. 그런 얘길 하고나서 책을 펼치니 ‘질 사는 조카가 우리 마누라 생일이라고 인편에 미역을 부쳐왔다. 그런데 나는 부인 생일인지 알지도 못했는데 시집간 조카가 이런 것까지 부쳐왔으니 여간 고맙지 않다’는 얘기가 나오는 거였어요. 그때 그걸 영인하자고 개인적 제안도 하고 국사편찬위원회 분들을 모셔가도 내놓지를 않아요. 그런데 97년도에 별안간 전화가 와서 그 책 가져가라고 했어요. 곧바로 국편 식구 불러 차용증 다 쓰고 가져가 영인한 지 3개월 만에 돌아가셨어요. 2년 있다가 책이 나왔어요. 그게 제일 보람 있어요. 관란재는 동전 맹보순 선생의 제자였어요. 정영대 선생은 맹보순을 한수 이남 최고의 학자라고 하셨어요. 조선일보 33년 기사에 용인 유림들이 모여서 맹보순이 죽었는데 앞으로 유학이 어떻게 해 나갈지 걱정이라는 기사가 실렸어요.”

 

관란재일기는 1912년부터 1948년까지 36년간의 기록으로 일제시기 용인을 중심으로 한 경기도 일원의 생활사와 역사 연구에 귀한 자료다.

 

맹동전의 며느리가 이 전 소장의 대고모다. 이 전 소장은 대고모가 시집가서 고생한 이야기를 어렸을 때 많이 들었고 관란재일기에 맹동전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특히 관심이 많다. 개인적으로라도 돈이 많으면 번역하고 싶지만 현실 여건이 안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다.

 

이 전 소장은 90년대에 자발적으로 용인의 도요지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호암미술관 부관장인 김재열씨를 알게 되면서 도자기에 대해 많이 배우기도 했고 관심도 갖게 됐다. 어느날 김재열씨가 “용인 향토사에서 도자기가 중요한데 조사가 안 돼 있다. 32년 일본 사람이 조사해 놓은 게 다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때부터 주말에 버스타고 산골짜기를 다니면서 도요지를 조사했다. 30여 곳을 몇 년에 걸쳐 찾아놨다. 마침 97년에 용인시가 용인의 도요지 지표조사 보고서를 발간할 때 김재열씨를 단장으로 하고 이남규 한신대학교 교수 등 당시 도자기 분야 내로라는 사람들과 함께 조사단 조사위원으로 참여한 것은 보람이다.

 

“조사 필요성에 대해 듣고 나서 혼자서 사기막, 점촌 지명을 쓰는 동네 찾아가서 동네 사람들한테 물어서 찾았어요. 근방에 또 없냐고 물으면 자신만 아는 거라면서 가르쳐줘서 가보면 분청사기터가 나오기도 했어요. 그렇게 몇 년간 고생한 게 결실이 맺어지니까 굉장히 보람이 있고 흡족했죠.”

 

앞으로는 용인씨족사회에 대해 공부하고 싶어 한다. 지금까지 30여 용인의 성씨에 대한 조사를 마쳐놨다. 반 정도 했다.

 

“최소한 용인성씨가 어떻게 들어왔다 그런 거를 조사했어요. 누군가 그걸 활용해서 더 연구하지 않겠어요.”

 

이종구 전 소장은 용인의 근현대 인물에 대해서도 조사를 통해 ‘용인 근현대 인물열전’ 공저자로 참여했다. 그는 “지역사회에 모범이 되는 인물들을 초등학교 운동장에 동상으로 세워 어린이들이 내고장 인물을 알게 된다면 좋겠다“며 “앞으로도 연구할 현대적 인물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주변서부터 발로 뛰어다니면서 향토사의 폭을 넓혀나가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용인시 중공군 무덤 조사 보고서(용인문화콘텐츠 공모당선)도 동네서부터 시작됐다.

 

향토사에 대해 무궁한 사랑과 자긍심을 가지면서 내 고장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이종구 전 용인학연구소장의 앞으로의 연구 결실에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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