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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배시인의 감동이 있는 시

세월

     곽재구

 

하얀 민들레 곁에 냉이꽃

냉이꽃 곁에 제비꽃

제비꽃 곁에 산새콩

산새콩 곁에 꽃다지

꽃다지 곁에 바람꽃

 

소년 하나 언덕에 엎드려 시를 쓰네

 

천지사방 꽃향기 가득해라

걷다가 시 쓰고

걷다가 밤이 오고

밤은 무지개를 보지 못해

아침과 비를 보내는 것인데

 

무지개 뜬 초원의 간이역

이슬밭에 엎드려 한 노인이 시를 쓰네

 

곽재구는 1954년 전남 광주에서 내어났다.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사평역에서」가 당선되면서 시단에 나왔다. 그는 인간 본래의 사랑과 그리움을 노래해온 서정성 짙은 시세계를 보여준 중견시인이다. 이번 시집 『꽃으로 엮은 방패』는 등단 40주년을 맞아 펴낸 시집으로 맑고 고운 서정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세월」은 그의 자화상이다. 시간의 잔혹성은 영원불변이어서 누구에게나 가혹하다. 언덕에 엎드려 시를 쓰던 소년은 이제, 무지개 뜬 초원의 간이역, 이슬밭에 엎드려 시를 쓰는 노인이 되었다. 언젠가는 하늘에서 은하수에 엎드려 시를 쓰게 될 것을 예감케 한다.

소년의 계절은 봄이어서 민들레, 냉이꽃, 제비꽃, 산새콩, 꽃다지, 바람꽃이 피어 있다. 소년이 봄인 것이다. 노년이라고 해서 어둡지만은 않다. 천지사방에 꽃향기 가득한 봄도 있고 봄을 걷다가 시를 쓰고, 걷다가 밤이 오기도 한다. 밤은 무지개를 보지 못하니까 대신 아침과 비를 보낸다. 그 비가 초원에 뜨는 무지개를 만든다. 초원의 간이역 이슬밭에 엎드려 노 시인은 시를 쓰는 것이다. 노년에게는 꽃향기와 무지개와 아침과 비와 초원과 간이역은 낭만이고 서정이다. '창비' 간 『꽃으로 엮은 방패』 중에서. 김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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