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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홀대하며 ‘제2의 빌바오’ 공염불

LOCAL FOCUS_낯 뜨거운 ‘이건희 미술관’ 유치전

 

 

 

 

 

 

 

 

 

 

 

 

 

 

 

 

용인시, 올해 문화예술작품 구입예산 0원

내년 특례시, 시립미술관 건립 계획 없어

“친구따라 강남 가는 격…” 면피용 비판

문화예술 중요성 깨닫는 계기라도 삼아야

 

[용인신문]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콜렉션으로 알려진 희귀 미술품 리스트가 세상 밖으로 나오면서 나라 안팎이 떠들썩하다. 전국 지자체들은 소위 ‘이건희 미술관’을 유치하겠다며 다양한 명분까지 내세워 유치전에 합류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이병철 이건희 홍라희 콜렉션’인 미술품들이 이건희 회장 사망 후 상속세 논란 끝에 국가 기증을 하게 된 것. 그런데 뜬금없이 지자체들 사이에 ‘이건희 미술관’ 유치전이 벌어지고 있다. 지자체마다 아전인수격의 낯뜨거운 경쟁이 주는 또 하나의 그림자와 교훈에 대해 짚어본다. -편집자 주-

 

# 실체없는 ‘이건희 미술관’ 유치전

“고 이건희 회장의 미술품 기증과 관련, 기증한 정신을 잘 살려서 국민들이 좋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별도의 전시실을 마련하거나 특별관을 설치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라.”

 

지난 달 28일 문재인 대통령이 지시한 말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유족 측이 국립현대미술관과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미술품 2만 3000여 점을 기증한다고 밝힌 직후였다. 세계 역사상 개인 소장 미술품을 2만 3000여 점이나 기증한 사례는 처음이다. 경제가치로는 3조 원대다.

 

이와 관련, 주무부서인 문화체육관광부는 입장 정리를 못한 상태다. 반면, 표 계산법이 빠른 정치인들이 앞다퉈 유치전을 시작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 상황에서 각 지자체와 시민단체, 심지어 지역언론까지 나섰다. 평소 지역문화예술발전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정치인들까지 나서니 쇼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지난 21일 현재, 실체도 없는 ‘이건희 미술관’ 유치 희망을 공개적으로 밝힌 지자체와 지역단체는 20여 곳이다. 경기도와 용인·수원·평택·오산시, 부산·대구·경주·창원·진주·여수·의령 등지자체들은 저마다 이 회장과의 인연을 강조했다. 수도권은 삼성 본사와 반도체 공장 등이 있는 점을 들었다. 경상도의 경우 이 회장과 그의 부친 고 이병철 회장의 고향인 점을 앞세우고 있다. 그러나 정작 정부나 삼성 측은 미술관 건립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지 않고 있다. 그러니 뜬구름 잡는 격일 수도 있다.

 

정부는 특정 지역을 선정해 별도의 미술관을 지을지, 아니면 국립기관 분관 혹은 기증품 소장처의 분관이 될지조차 정해진 바 없다는 입장이다. 미술품의 특성상 전국 미술관으로 장기 임대 형식 등을 취할 가능성도 크다. 따라서 전국 지자체들이 공공미술관 또는 부지와 예산 계획없이 ‘이건희 미술관’ 유치에 목소리만 높이는 건 생떼라 할 수도 있다.

 

용인시에서는 지난 5일 정찬민 국회의원(용인갑‧국민의 힘)이 페이스북을 통해 이건희 미술관 유치를 희망했고, 용인시도 다음 날 보도자료를 통해 유치 희망 의사를 밝혔다. 잇따라 백군기 시장도 페이스북을 통해 용인과 삼성의 깊은 인연을 내세워 ‘이건희 미술관’ 유치를 희망했다. 이후 시민단체 등에서도 플래카드와 SNS를 통한 유치 캠페인을 시작했다. 그렇지만 삼성과의 인연 외에는 특별한 카드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지자체들이 미술관 유치에 뛰어드는 이유는 단순하다. 스페인의 쇠퇴해가던 지방 공업도시 빌바오가 미국 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을 유치하면서 경제부흥을 했던 바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빌바오만큼 경쟁에 뛰어든 지자체들이 경제적으로 절박한 상황인지는 의문이다. 특히 지자체들의 평소 문화예술발전에 대한 관심과 예산집행내역을 보면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용인시, 문화예술작품 구입비 0원

용인시에 따르면 2021년 문화예술작품 구입비는 ‘0원’이다. 2022년 특례시 승격을 앞뒀지만 지역예술인들의 숙원사업인 ‘용인시립미술관’ 건립 계획도 없다. 소규모 사립미술관들은 제법 많지만, 시비 지원 현황은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그나마 용인시에 위치한 ‘호암미술관’은 삼성 소유이고, ‘경기도박물관’과 ‘백남준아트센터’는 경기도에서 관리 중이다. 경기도 역시 문화예술작품구입예산은 총예산 28조원 중 5억원에 불과하다. 아울러 용인시는 지역에 있는 문화예술자산조차 활용하지 못한다는 비판의 도마 위에 올라있다.

 

반면, 아니면 말고 식의 정치적 셈법과 발표는 빠르다는 평가다. 용인 뿐만 아니라 전국의 지자체들이 평소엔 미술에 관심도 없다가 대규모 기증 사례가 나오자 공짜로 먹어보겠다는, 낯뜨거운 유치전에 뛰어든 셈이다. 이미 유가족 측은 작품의 성격에 맞게 나눠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대구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 이중섭 미술관, 박수근 미술관 등에 이건희 컬렉션을 기증한 상태다.

 

#“문화예술 중요성 깨닫는 계기돼야”

이건희 컬렉션은 이제 공공재다. 수만 점의 리스트가 세상에 오픈됐고, 기획자와 큐레이터들에겐 새로운 기회다. 그만큼 우리나라 미술시장도 넓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앞으로 정부 대책이 나와야겠지만 지자체의 능력과 활용방안, 그리고 지속적인 재정지출이 미술품 분산 유치의 전제가 될 것이다. 만약 지자체가 어떤 형태로든 미술품을 가져다만 놓고 돈과 인력이 없으면 더 큰 문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용인시의 경우 만약 시립미술관이 있었다면 사전에 리스트업이 되어 몇 점이라도 기증 받았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삼성과의 깊은 인연을 강조하며, 용인 땅으로의 유치를 희망하는 읍소 밖엔 내세울 게 없는 상황이다.

 

용인시의 땅은 넓고, 삼성과의 인연이나 호암미술관과 같은 기존 인프라는 충분하다. 하지만 지속가능한 문화예술예산과 전문인력 등을 종합해보면 준비와 역량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결국, 면피용으로 유치전에 뛰어들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게 됐다.

 

강남대 경제학과 서진수 교수(미술시장연구소 소장)는 “용인시에 미술관이 있거나, 평소 문화예술작품 구입예산을 보면 면피용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면서 “차제에 용인지역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과 중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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