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보 오래인 관습-그것은 전통을 말함이다 오장환 내 성은 오씨. 어째서 오가인지 나는 모른다. 가급적으로 알리어 주는 것은 해주로 이사온 일청인이 조상이라는 가계보의 검은 먹글씨. 옛날은 대국숭배를 유심히는 하고 싶어서, 우리 할아버니는 진실 이가였는지 상놈이었는지 알 수도 없다. 똑똑한 사람들은 항상 가계보를 창작하였고 매매하였다. 나는 역사를, 내 성을 믿지 않어도 좋다. 해변가으로 밀려온 소라 속처럼 나도 껍데기가 무척은 무거웁고나. 수퉁하고나. 이기적인, 너무나 이기적인 애욕을 잊을랴면은 나는 성씨보가 필요치 않다. 성씨보와 같은 관습이 필요치 않다. 오장환(1918-1951)은 충북 보은군 회인면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경기도 안성으로 이주하여 안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휘문고보를 중퇴한 후 일본에 잠시 유학하기도 했다. 1933년 『조선문학』에 「목욕간」을 발표하며 문단 생활을 시작했다. 정지용 시인의 제자이며 백석과 더불어 1930년대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광복 후에는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하여 활동하다가 1948년 2월경 월북하였으나 남로당계로 분류되어 숙청되었다. 「성씨보」는 자신의 족보에 대한 시다. 그는 오씨지만 중국에서 해주로 이주해온 청인
여승 백석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점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 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백석(1912-1996)은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나 오산고보를 졸업하고 동경의 아오야마 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1934년 귀국하여 조선일보사에 입사했으며 1935년 시「정주성」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그의 향토성 짙은 문장과 시어들이 독창적인 향기를 지녀 많은 시인들이 백석의 시를 닮으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백석은 백석 한 사람으로 충분하다. 「여승」은 일제 강점기에 비극적 삶을 살아가는 한 여인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가난 때문에 가족을 잃고 여승이 되기까지의 고단한 여정과 여승의 비극적 삶을 통한 시대적 현실을 서정적이며 애상적으로 그리고 있다. 일제강점기의 민족적 비애를 느끼게 하는
절정 이육사 매운 계절의 챗죽에 갈겨 마츰내 북방으로 휩쓸려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리빨 칼날진 그우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꾸러야하나? 한발 재겨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깜아 생각해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보다 이육사(1904-1944)는 경북 안동군 도산면 원천동 881번지에서 이가호와 허길의 둘째로 태어났다. 이활이 이육사로 이름이 바뀐 것은 1929년쯤으로 보인다 대구 감옥에서 출옥하면서 발표된 글에서 ‘대구 264’로 쓴 필명이 보이다가 이육사(李陸史)로 쓰고 있다. 264는 대구 감옥의 수인번호다. 그는 항일투쟁을 위해서 중국으로 건너갔다. 난징에서 의열단장 이원봉을 만나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 입학했다. 귀국 후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하다 체포되었다. 베이징으로 압송된 그는 베이징 주제 일본총영사관 경찰에 구금되었다가 1944년 1월 16일 순국했다. 그의 대표작은 「광야」다. 이 작품은 발표되지 못하다가 해방 후인 1945년 12월 17일자 <자유신문>에 「꽃」과 함께 발표되었다. 「절정」은 그의 항일운동의 여정과 맞물려 해석되는 작품이다. 화자가 북방으로 휩쓸려 온 것은 매운 계절의 챗죽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의
푸른 언덕 가으로 홍사용 푸른 언덕 가으로 흐르는 물이 올시다 어둔 밤 밝은 낮 어둡고 밝은 그 그림자에 괴로운 냄새, 슬픈 소리, 쓰린 눈물로 뒤섞여 뒤범벅 같게. 돌아다 보아도 우리 시고을은 어디멘지 꿈마다 맺히는 우리 시고을 집은 어느 메쯤이나 되는지 떠날 제 『가노라』 말도 못 해서 만날 줄만 여기고 기두르는 커다란 집 찬 밤을 어찌 다 날도 새우는지- 지난 일 생각하면 가슴이 뛰놀건만 여위인 이 볼인들 비쳐 낼 줄 있으랴 멀고 멀게 자꾸자꾸 흐르니 속 쓰린 긴 한숨은 그칠 줄도 모르면서 길고길게 어디로 끝끝내 흐르기만 하랴노- 퍼런 풀밭에서 방긋이 웃는 이 계집아해야 무궁화 꺾어 흘리는 그 비밀을 그 비밀을 일러라 귀밑머리 풀기 전에- 홍사용(1900-1947)은 경기도 용인군 기흥면 농서리 용수골(동탄면 석우리, 돌모루)에서 대한제국 통정대부 육군헌병부위 홍철유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지금의 화성시 동탄 신도시로 노작홍사용문학관이 있는 곳이다. 1922년 『백조』를 창간했다. 그의 대표작인 시, 「나는 왕이로소이다」는 1923년 『백조』 3호에 발표되었다. 1923년부터 '토월회'공연의 자금을 조달하고 '토월회'의 문예부장을 맡아 본격적으로 연극 활
칠성판의 고인은 바로 소생이로소이다 고정희 어누 때보다 제 눈빛은 밝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천천히 관속을 응시했습니다 “천고지붕 당했으니 하사말씀 가이없나이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직사각의 칠성판에 누워 있는 건 고인의 시체가 아니라 은빛으로 번쩍이는 ‘거울’이었습니다 그 거울 속에 누워 있는 건 다름 아닌 소생의 상반신이었던 것입니다 그때 소생은 죽었습니다 ......... 무등산 중봉 허리에서 우리는 너나없이 칠성판에 누워버렸습니다 오오 그것은 우리들의 장례 우리들의 거울장이었습니다 (이하 생략) 고정희(1948-1991)는 전라남도 해남에서 출생했다. 1975년 『현대문학』 추천완료로 문단에 나왔다. 그녀는 현실인식과 역사의식에 의한 신랄한 비판과 준열한 고발을 해온 시인이다. 1980년대에 그녀는 시를 통해 남녀평등과 여성해방을 부르짖기도 했다. 「칠성판의 고인은 바로 소생이로소이다」는 그녀의 장시집 『초혼제』에서 부분을 인용한 것이다. 그 시대의 마지막 선비가 죽어 그의 장례를 치르는 의식으로부터 시가 시작된다. 선비는 민주주의일 수도 있고 자유일 수도 있다. 관속을 응시하던 화자는 칠성판 위에 누워 있는 거울을 본다. 거울 속에는 화자 자신이 누워
꽃 강은교 지상의 모든 피는 꽃들과 지상의 모든 지는 꽃들과 지상의 모든 보이는 길과 지상의 모든 보이지 않는 길들에게 말해다오 나, 아직 별 위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강은교는 1945년 함경남도 홍원에서 내어나 1968년 『사상계』 신인문학상으로 문단에 나왔다. 그녀의 시는, 등단 이래 40년 가까운 동안 끊임없는 자기 심화와 정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성장해왔다. 그리하여 그녀는 현대시의 권역에서 하나의 뚜렷한 고전적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 강은교는 한국 현대시를 운위할 때 시사적 자산으로 치부하게 되었으며 한국 현대시사에 우뚝 섰다 할 것이다. 「꽃」은 화자의 가이없는 기다림을 노래한 시다. 지상에 피는 모든 꽃들과 지상에서 지고 있는 모든 꽃들에게 화자가 아직 별 위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말해달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상의 모든 보이는 길들과 지상의 모든 보이지 않는 길들에게도 화자가 아직 별 위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전해달라는 것이다. 꽃이 무엇을 은유인가를 알아내는 것이 이 시의 비의다. 꽃은 무엇의 객관적 상관물로는 그 수용 폭이 너무나 넓다. 사랑이거나 사람이거나 역사이거나 무엇을 치환해도 치환 가능하다. 지구라는 별에서 일어났거나 일어나고 있는,
매미소리 문인수 장마가 거짓말같이 물러가고 볕, 쟁쨍한 날씨다. 그야말로 대폭 시꺼먼 장막이 활짝 걷혔다. 매미소리가 철사 빨랫줄 같은 직선으로 여러 가닥 길게 걸린다 수해현장은 아직 참담한 상태 그대로다. 세간들이 야생으로 나간 것처럼 여기저기 젖어 널브러져, 깊이 주저앉으며, 무슨 뿌리라도 내리는 것 같다. 뭘 버리고 뭘 챙겨 말려야 할지 늙은이들의 거동이 먹구름처럼 뒤적뒤덕 널린다. 문인수 (1945-2021)는 경북 성주에서 태어나 1985년 『심상』 신인상으로 문단에 나왔다. 그는 줄곧 압축적이고 절제된 시어로 외롭고 소외된 존재들을 향해 따뜻한 시선과 연민을 드러내는 작품을 써왔다. 서정적이며 사변적이고 성찰적이며 원숙미가 있고 젊은 감각이 살아 있는 서정의 세계를 보여 준 시인이다. 「매미소리」는 참담한 수해현장을 묘사한 작품이다. 서정적인 분위기는 사라지고 수해민의 고단한 삶의 현실이 리얼하게 그려져 있다. 장마가 거짓말처럼 물러가고 볕이 쨍쨍한 날씨다. 시꺼먼 장막이 걷힌 것이다. 매미소리는 철사 빨랫줄처럼 직선으로 여러 가닥 걸려 귀가 시끄럽다. 햇빛 아래 내놓은 수해현장의 세간들은 참담하다. 햇빛 아래 누추하지 않은 것이 없겠지만 내놓은
키스 김언 나는 나라고 가끔씩 싱거운 생각을 한다. 너는 너라고 가끔씩 싱거운 맛을 본다. 내 생각이 어디 발라져 있나, 물어보면 손가락을 쭉 뻗어 내 입술을 가리킨다. 너는 너라고 맛은 네가 보고 네 입술은 달다 쓰다 말이 없다. 한없이 거추장스러운 이빨을 가지고 있다. 혀를 깨물고 김언은 1973년 부산에서 태어났다.1998년 『시와 사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김언은 엇갈리고 지연되며 교착되는 오해의 국면들을 ‘미학’이라고도 말하고 ‘혁명’이라고도 말하며, 때론 ‘기하학적인 삶’이라고도 말한다. 어떻게 말하건 세계의 다양한 국면들에 역설과 부조리는 불가피하다는 그의 생각이 중요하다 할 것이다. 김언은 무적자다. 어디에도 그의 주민등록이 되어 있지 않다. 어떤 시론에도 어떤 시인에도 기대지 않고 독창적인 어법으로 시를 섰다. 경계 밖으로 향하려는 여정은 시가 되는 순간 늘 내부로 향하지만, 등단 이래 20년 넘게 시를 써온 시인에게 귀향이란 말은 아직은 사치다. 이번 시집 『거인』의 키워드는 존재, 거품, 연기, 먼지, 신기루, 유령처럼 고정된 형체가 없는 이미지, 혹은 사라진 사람이나 떨어진 사람이나 없는 사람처럼 존재가 불분명한 대상들의 실향의
국어사전 장승리 병든 아버지 옆에서 국어사전을 읽어 내려갔다 어두운 계단을 내려가듯 병든 아버지 옆에서 검은 아버지를 읽었다 부유하는 계단에서 닿을 수 없는 바닥의 촉감을 기억하려 애쓰며 정든 아버지를 외면하며 검은 아버지를 읽다 밝아오는 죄책감을 수첩에 옮겨 적었다 인생은 슬픔이라고 말을 잃어버리기 직전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새벽이었다 유언이 아니라 첫 울음이었다 한 단어뿐인 페이지 속에서 읽다 잃어버렸다 아버지를 아버지가 덮었다 한 계단이 한 계단을 지웠다 장승리는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2년 중앙일조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는『습관성 겨울』『무표정』『반과거』가 있다. 이번에 발행된 시집『무표정』은 문학과지성사 R 씨리즈다. 「국어사전」은 아버지의 죽음과 시 쓰기에 관한 시편이다. 그러므로 아버지에 대한 추모의 시이기도 하고 메타적 시이기도 하다. 시적 공간은 병실이다. 국어사전은 시의 객관적 상관물이다. 아버지를 간병하며 시를 쓰고 있는 화자의 모습이 냉정해서 불편한 시다. 메타적이어서 더 그럴 것이다. 병든 아버지 옆에서 검은 아버지를 읽는 화자는 이미 아버지의 죽음을 예견하고 그 죄책감을 시로 옮겨 적는 것이다. 아버지
퍼펙트 블루 백은선 검은 돌을 순에 쥐고 물 위를 걸었다 꽝꽝 얼어붙은 하늘은 높이를 가늠할 수 없어서 계속 걸었다 천천히 나는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백은선은 198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2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나왔다. 들끓는 시어가 가득 찬 첫번째 시집 『가능세계』로 ‘가장 뛰어난 첫 창작집’에 수여하는 김준성문학상을 수상한 그녀는 두번째 시집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장면들로 만들어진 필름』에서 범람하는 문장으로 슬픔과 불안을 펼쳐보였다. 세 번째가 되는 이번 시집 『도움받는 기분』에서 백은선은 사라진 기억의 지도를 만들듯이 무너진 마음을 계속 쌓고 다시 허물면서 겹겹이 아름다운 무늬를 보여준다. 그녀는 매일매일 벌어지는 작은 싸움들을 기록하는 것으로 시를 완성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시와 자신을 계속 의심하면서 쉽게 타협하지 않고 오늘로부터 도망치지도 않는다. 백은선의 시는 잊히지 않는 기억과 오래 품어 물러진 감정을 흩뜨려 여러 겹으로 펼쳐놓는다. 의미가 함축된 무거운 시어가 아니라 끓어오르는 물거품이거나 흩날리는 눈발이거나 쏟아지는 빗소리처럼 가볍게 겹쳐지는 문장들이 그려내는 시의 풍경은 황량하고도 아름답다. 그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