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리
박설희
바람을 입는다
두 눈에 해를
가슴에 달을 품고
맨 앞에 내세운 부리
끝이 닳아있거나 금이 가 있거나
그것은 집 짓고 사냥하고 깃털 고른 흔적
그 속에 감추어져 있다
찻잎 같은 혀
그리고 공룡의 포효보다
야무진 침묵
발을 뒤로 모으고
허공을 가로지를 때
앞세운다,
제 존재가 무엇보다 크고 귀중하다 일러주는
따뜻한 부등호
박설희는 강원도 속초에서 유년을 보냈다. 2003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으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는 『쪽문으로 드나드는 구름』 『꽃은 바퀴다』가 있으며, 이번 시집이 세 번째 시집이다.
「부리」는 어느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새의 부리에 대한 묘사로 이루어진 시다. 새는 날며 바람을 입는다. 그리고 두 눈에 해를 담고 가슴에 달을 품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새는 맨 앞에 부리를 내세운다. 부리는 끝이 닳아 있거나 금이 가 있다. 집을 짓고 사냥하고 깃털을 고른 흔적이다. 부리 속에는 찻잎 같은 혀가 감추어져 있다. 부리는 야무진 침묵을 지킨다. 새는 발을 뒤로 모으고 허공을 가로지를 때 부리를 앞세운다. 새가 나는 모습은 제 존재가 무엇보다 크고 귀중하다는 것을 일러주는 따뜻한 부등호로 보이는 것이다. <푸른사상> 간 『가슴을 재다』 중에서. 김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