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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 2023년 겨울

오룡(평생학습교육연구소 대표/오룡 인문학 연구소 원장)

 

[용인신문] ‘아무도 2등은 기억하지 않습니다’ 30년 전에 나온 광고 문구다. 광고주는 삼성이다.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전략의 상징과도 같은 문구는 신문과 방송에서 무차별적으로 쏟아졌다. 광고는 ‘승자독식 사회’의 선언문처럼 강렬했지만, 우리 삶 속으로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승자에게 부여되는 보상은 당연한 권리가 되었다. 다채로운 능력과 다양한 재능을 지닌 사람보다 어떤 분야의 천재가 세상을 구하는 존재로 대접받았다. 일등을 차지한 그는 자본주의 시장의 절대 신과 같은 존재였다. 승자가 차지한 독점과 독식의 세상이 물질 만능주의라는 비판이 따라왔지만 멈추지 않았다. 극단적 이기주의가 성공한 자산가의 이미지로 포장됐다.

 

서로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는 연대는 무너졌다. 이해관계가 아닌 만남은 부담스러워졌다. 고통에 대한 공감과 슬픔에 대한 나눔은 갈수록 버거워졌다. 만사형통, 자본과 권력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사회, 부의 세습으로 계층 이동 사다리는 사라져버렸다. 제로섬 사회와 하류사회, 잉여사회라고 자조하는 탄식의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사회적 공감과 소통의 부재는 민주주의의 퇴보로 이어졌다. 상대에 대한 존중이 무너지는 사회는 민주주의의 가치와 원칙을 잠식한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고리를 끊는 원자화가 전체주의의 기반’이라는 한나 아렌트의 주장대로라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위기가 분명하다. 부정의에 분노하고 정의를 요구하는 행동에 대해 일등 지상주의자와 전체주의자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받아들일 마음이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사회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 낸 감정과 이성으로 발현시킬 세상의 변화는 두려워한다.

 

민주주의는 이런 팽팽한 긴장감이 작동할 때 성장한다. 고통과 비극의 현장을 들여다보고 공감하는 순간, 잘못된 것들에 대해 바로잡고 싶어 한다. 혼자 할 수 없기에 함께 공유하고자 소통한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연대의 감정이 스며든다. 서로에 대한 막연한 타자에서 적극적으로 동질화된 우리가 된다.

 

영화 <서울의 봄>의 흥행 포인트는 관객의 감정 동질성이다. 부정의에 맞선 사람들이 겪은 고통에 대한 안타까움. “실패하면 반란, 성공하면 혁명 아닙니까!”라고 외쳐대는 영화 속 전두광에 대한 역겨움이다.

 

2030 세대와 4050 세대의 공감 포인트가 일치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군대의 사조직인 하나회 소속의 출세한 군인들은 처벌받지 않았다. 검찰 내의 특정 라인은 출세(?)를 거듭하며 권력을 독점하고 있다. 아무도 그들의 잘못을 처벌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서 분노의 심장 박동수가 상승한 것이다.

 

권력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소유’했다는 관념이다. 추상적인 소유의 개념을 구체화하자면 ‘권력이 있다’와 ‘권력을 가졌다’로 구분해야 한다. 그러므로 1979년 12‧12 군사반란에 성공한 전두환과 신군부는 권력을 가진 것이지 권력이 있는 것이 아니다. 권력은 신군부가 아닌 고문한테서 나온 것이다. 전두환의 5공 정권을 무너뜨린 함성은 고문 정권 규탄에서 시작됐다.

 

아전인수와 불통의 정치에 일일이 반응하다가는 분사(憤死)하기에 십상이다. “티브이 채널을 돌려라.”. “신경 쓰지 않고 살자”라는 반응이 넘치는 2023년은 검찰 정권에 대한 공포의 감정이 아니라 분노의 표현이다.

 

공포는 겁먹은 자에게만 효과가 있을 뿐, 다수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검찰이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압수수색’ 때문이다. ‘압수수색’에 권력이 있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뿐, 아무것도 아니다.

 

사족 : 전방은 무사했고 세상은 완벽했다/ (……)/ 아무도 그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이성복 시인이 말한 ‘그날’이 과거였는지, 현재였는지, 미래였는지 모른다. 다만 그날을,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에서 <뒹구는 돌이 마침내 깨어났다>로 제목을 바꾸고 싶은 날이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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